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그만 파라, 뱀 나온다 - 정끝별

여만 2012. 10. 30. 09:00

그만 파라, 뱀 나온다 

  정끝별



속을 가진 것들은 대체로 어둡다
소란스레 쏘삭이고 속닥이는 속은
죄다 소굴이다

속을 가진 것들을 보면 후비고 싶다
속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속을 끓이는지 애를 태우는지
속을 푸는지 속을 썩히는지
속이 있는지 심지어 속이 없는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다

속을 알 수 없어 속을 파면
속의 때나 딱지들이 솔솔 굴러 나오기도 한다
속의 미끼들에 속아 파고 또 파면
속의 피를 보기 마련이다

남의 속을 파는 것들을 보면 대체로 사납고
제 속을 파는 것들을 보면 대체로 모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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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8년 《문학사상》 신인발굴 시 부문에 「칼레의 바다」 외 6편의 시 당선.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현재 명지대 국문과 교수. 시집『자작나무 내 인생』『흰 책』『삼천갑자 복사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