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연어
박이화
고백컨대
내 한 번의 절정을 위해
밤새도록
지느러미 휘도록 헤엄쳐 오던
그리하여
온밤의 어둠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비릿해질 때까지
마침내 내 몸이
수초처럼 흐느적거릴 때까지
기꺼이
射精을 미루며,
아끼며,
참아 주던
그 아름답고도 슬픈 어족
그가 바로 지난날 내 생에
그토록 찬란한 슬픔을 산란하고 떠나간
내 마지막 추억의 은빛 연어입니다
- 시집 <그리운 연어> (애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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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화의 시는 구석구석 요긴하게 장착된 시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잘 읽힌다. 독자의 기대 이상으로 건강하고 솔직하여 그 에로틱함에 언뜻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남자와 여자의 감상태도가 다르고 시인이 댄스스포츠의 트레이너로 활동할 정도의 맵시와 결이 고운 여성이란 점을 감안하면서 시를 읽는다면 또 감응의 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시인 자신의 원초적 본능과 자연스러운 몸의 욕망이 농축된 성적 언어를 마구 내뿜으며 돌진해 오는데도 전혀 천박하거나 시의 격이 하강하지 않는다. 문학에 있어서의 성 담론은 자칫 그걸 들추어내는 순간부터 추문에 휩싸일 수 있으나 성적 충동과 추억이 뚫고 지나간 자리가 다행히도 1급수 강물 속이라 은빛으로 빛나고 안온하며 아름답다.
어느 누구도 성본능과 성욕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죄악시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인간다움의 한 징표일 뿐만 아니라 존재 확인의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성은 드러내놓고 찬미할 대상이거나 삶의 중요한 통로로 인식되기 보다는 어떤 연유인지 감춰지고 억압받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시인은 성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억압된 성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과감하게 까발리고 유포하였다.
어쩌면 관능적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삶의 본질을 깨우치고 우주의 질서를 통찰해가는 사유가 온몸으로 발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박이화의 에로티시즘은 그의 시적 원동력이며 삶 자체라는 평가를 얻으면서 ‘에로티시즘의 여왕’으로 등극한다. 시집 <그리운 연어>역시 우리 현대시사에서 매우 아름답고 독특한 연애시집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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