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발자국
신현락
나비는 꽃잎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새는 죽어서 구름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
아무도 꽃잎의 발자국을 보지 못한다
꽃잎이 지고 나비의 날개는 비에 젖는다
나비를 비애의 그림자라고 명명하는 건
당신의 몫이겠으나 여기부터는 구름의 영역이다
당신은 꽃잎을 밟으며 꽃잠에 들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는 구름의 문장을 해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름이 하늘색을 지우는 건 잠깐이다
한때 나는 구름을 향해 무어라고 소리를 쳤으나
새들만이 그 너머로 날아갔음을 안다
꽃잎 위에 비 내리고 어제가 오늘이 되었다
시간은 뒤를 돌아보지 않지만 나는 죽은 새를 들고
구름 위의 발자국을 맞히는 신궁을 기다린다
—시집『히말라야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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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락 / 1960년 경기 화성 출생. 199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따뜻한 물방울』『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히말라야 독수리』, 논저 『한국 현대시와 동양의 자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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