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Shape of Water -수진

여만 2024. 12. 3. 14:41

Shape of Water

 

   수진

 

(비에 젖을 때, 새는 바다를 기억할까?) ​​

 

마당에 던져둔 해면海綿이 비를 맞고 있다. 몸이 떨린다. 흥건히 젖은 입을 벌린다.

 

누군가는 최초의 동물이 해면이라고 했다. 동물계 생물 중 인간과 가장 먼 것 또한 해면이라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우리가 같은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구멍을 안에 숨기고 다른 하나는 밖에 내놨다가 들켰을 뿐이야. 마치 인간과 새가 같은 손가락뼈를 가지고 태어나듯 우리는 같은 곳에서 왔다.

 

뼈로 기원을 깊이 찌르자 구멍이 퉤! 침을 뱉었다.

 

먹고 싸고 울고 먹고 자는 나는 해면에 더 가까운 동물이다. 온통 물이고 구멍뿐이라 견고하게 무른 것도 비슷하다.

 

머금고 있는 물렁한 어제가 많아, 살짝만 건드려도 물을 뚝뚝 흘리지. 그러다가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간다. 탄성은 최초의 형태를 끝까지 기억한다는데, 동그랗게 등을 말아야만 잠이 드는 내 버릇은 어쩌면 인류가 지켜온 가장 오래된 탄성일지도 모른다.

 

천천히 젖는 것과 주룩주룩 내려가는 것은

같은 기억을 불러와

젖으면서 무거워지고 무거워져서

내려가고

떠내려가고

스스로에게 잠기고

(사실, 나는 물을 그릇에 담는 것조차 폭력이라고 생각했어)

 

구멍은 점점 하나의 서사가 된다. 수많은 입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입이 입을 벌린다. 하나의 입에서 다른 입으로 물이 옮겨진다. 침입한다. 고이는 물. 팽창하는 물. 터져버리는 물. 뱉는다. 도망간다. 다시 침입한다.

 

​ 축축한 키스

불온한 침투

유예된 탈주

그릇이 깨지고 물이 엎질러진다. 나는 해면도 되고 동시에 새도 될 수 있었는데,

 

간신히 인간이 되어

시 울음과 울림 사이

투명한 갈퀴를 기르고 ​

 

물을 끝없이 먹고도 허물어지지 않는 해면을 보다가,

물을 꼭 짜낸 후 배를 드러내고 떠오른 해면을 보다가,

왠지 아찔해져서 여기를 밑. 이라고 불러본다. 이건 구멍을 막는 나만의 방법. 밑에서 울컥, 무언가 떨어진다. ​

 

깊은 저류 밑 구릉

네발로 기어다니는 인간

공중으로 추방되는 플랑크톤

물 위를 달리는 뱀

빛 조각을 움켜쥐는 새

거기 누구?

누구든지

이름을 불러줘. 이름을 견디는 이름을 ​

 

(한때,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아프다고 생각했지만)

 

흐르는 물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 순간 물은 어떤 표정일까

옛사람들은 사진이 영혼을 가져간다고 믿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텅 비어 있었고

동그랗게 웅크려 등을 마주 대고

서로를 버티는 공허와 허공

마치 날기 직전의 새를 길러낸 둥지 같지?

새는 날아가고 빈 둥지는 빈 둥지를 길러낸다. 비와 기억 사이 축축한 틈을 손끝으로 문지르는 순간, 살며시 해면이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지그시 누르면 그렁그렁 참아온 진물을 뱉어내고, 물컹거리다가 다시 투명한 물이 서럽게 차오르는,

나의 게헨나, 나의 바다, 나의 이름은,

 

 

           ―월간 《현대문학》 202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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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 2022년 《시와 반시》 등단. 시드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