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셋째 날
―명상 시간
배수연
당신은 이미 눈을 감고 있지만
한 번 더 감을 수 있다
빵의 흰 살을 홍차에 적시듯
당신은 언젠가 강가에서 둥글고 따뜻한 자갈을 주웠지
그 자갈을 눈꺼풀 위에 대었어
눈을 두 번 감았다면 세 번 감을 수 있다
어두운 통로가 나타난다
그곳은 들판일 수도 사막일 수도 있지만 당신은
통로임을 알아차린다
멀찍이 문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가 있다면 그 나무는 문이다
의자 하나가 있다면 그 의자는 문이다
옛 애인이
양말 한 짝이
옆 방의 호랑말코가 있다면
그것은 문이다
당신은 그 문을 천천히 살펴본다
본다는 것은 이동한다는 것이다
옮겨간다 당신은
방금 전 당신으로부터
문에 닿는다
당신은 눈을 감고 있지만
지금
한 번 더 감을 수 있다
—계간 《포지션》 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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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연 / 1984년 재주 출생. 2013년 《시인수첩》으로 등단. 시집 『조이와의 키스』 『가장 나다운 거짓말』 『쥐와 굴』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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