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캠프 셋째 날―명상 시간

여만 2024. 11. 25. 13:46

캠프 셋째 날

 ―명상 시간

 

   배수연

 

 

 

당신은 이미 눈을 감고 있지만

한 번 더 감을 수 있다

빵의 흰 살을 홍차에 적시듯

 

당신은 언젠가 강가에서 둥글고 따뜻한 자갈을 주웠지

그 자갈을 눈꺼풀 위에 대었어

 

눈을 두 번 감았다면 세 번 감을 수 있다

어두운 통로가 나타난다

그곳은 들판일 수도 사막일 수도 있지만 당신은

통로임을 알아차린다

멀찍이 문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가 있다면 그 나무는 문이다

의자 하나가 있다면 그 의자는 문이다

옛 애인이

양말 한 짝이

옆 방의 호랑말코가 있다면

그것은 문이다

 

당신은 그 문을 천천히 살펴본다

본다는 것은 이동한다는 것이다

옮겨간다 당신은

 

방금 전 당신으로부터 

 

문에 닿는다

당신은 눈을 감고 있지만

지금

한 번 더 감을 수 있다

 

 

   —계간 포지션》 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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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연 / 1984년 재주 출생. 2013년 시인수첩으로 등단시집 조이와의 키스』 『가장 나다운 거짓말』 『쥐와 굴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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