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해변의 절벽-이병률

여만 2024. 5. 1. 08:19

해변의 절벽

 이병률

 

 

해안 절벽 찰랑이는 물결에 목을 걸고 바위가 떠 있다

바위 표면은 살려고 납작 붙어 있는 따개비 같은 것들로 희끗하다

내 눈에다 깊이 그것을 담으려 하지만

자주 물처럼 흔들려 어렵다

그것을 내려보다가 난 그만 울컥하였다

 

왜 슬프냐고 당신이 물었다

 

왜 슬프지 않으냐고 내가 물었다

 

만 년 전에 해안이 밀려와 여기 도착하였고

천 년 전에 높은 산으로부터

이 바위가 조금씩 굴러와 여기 잠겨 있을 텐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느냐고 말하려다

당신에게 자갈 하나 주워 건네는 것으로 다였다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2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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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림들」 「그날엔」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혼자가 혼자에게』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등이 있다. ‘시힘’ 동인이며 MBC 〈FM4U이소라의 음악도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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