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여만 2023. 6. 30. 09:00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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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설굴암에 오르는 영희」당선.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첨성대」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위령제」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슬픔이 택배로 왔다』등 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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