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밖에는 비가 내리고 -김상미

여만 2022. 12. 12. 13:18

밖에는 비가 내리고 

 

   김상미 

 

 

 

 

밖에는 비가 내리고 

우리는 아직도 침대에 있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애무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명분

 

창문을 두드리며 우리를 염탐하는 빗방울들 

벗어놓은 옷과 양말들

들끓는 책과 화분들 

벽에 걸린 채로도 잘도 익어가는 저 먼 정글의 

향기로운 과일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우리는 아직도 침대에 있다 

얼마나 놀라운가 

두려움 없는 사랑은 부재를 모른다 

그래도 잠시, 호흡을 조절하자 

한 번도 제자리를 떠난 적 없는 사랑은

우리의 욕망이 아무리 흘러 넘쳐도 

모든 걸 다시 제자리로 갖다놓는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을 더 사랑할 수 있다 

외로운 한 존재가 다른 외로운 한 존재를 열망하는 

가슴 뭉클한 허기를 한순간도 놓치지 말자 

 

밖에는 비가 내리고 

우리는 아직도 침대에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 

장미꽃이 활짝 피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시집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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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 부산 출생. 1990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