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라고 하니 - 김학중

여만 2021. 8. 29. 14:39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라고 하니

 

김학중

 

 

 

누가 알겠는가 시간도 때론 빛으로 돌아온다

빛이 돌아오는 길은 낡아서 무게가 는다

짐진 자의 몸으로 가만히

나는 몸을 굽혀 앉았다가

더 깊이 웅크렸다

돌아오는 것이 익숙하다는 듯

떠난 길을 평안히 딛고 오는 그것이

나는 아무래도 의심스럽지만

지혜를 배운 자들이 건네는 그런 미소로

이제는 모든 무게가 풍요롭게 익었으니

괜찮다고 아무 말 없이 오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라고 하니

열매는 알 것이다, 열매의 빛깔에 깃든 축복이

시간이 돌아와 앉은 빛이란 것을

그래서 모든 열매는 싱싱하다

쇠락하기까지 회복한 시간은

잘 익은 과육으로 온 땅에 수확의 때를 알리니

순간을 거두어들인 자들의 감사함이

들판에 넘실거렸던 때를 기억하는 자들아

우리가 여기라면 어떠하냐.

나는 나의 씨앗을 보지 못한 자라

아직 그 감사의 빛깔을 알지 못하지만

저 손짓이 나를 반기는 빛깔 앞에

가만히 나를 내버려두고

오늘은 햇빛을 맞는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이

늘 지금인 줄을 아직 모르기에

다만 이 빛이 따스하다고 말해도 괜찮다.

 

 

⸻계간 《포지션》 202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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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 1977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 박사 과정 수료.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