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침묵
채수옥
입 안 가득 물고 있는 물고기를 토해내 봐 어떤 증상처럼 파닥거리는 실마리가 잡히겠지 물고 있던 침묵에 비늘이 돋아 날거야
침묵이 금이 되는 걸 본적 있니
우두커니 서서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뭉텅뭉텅 하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목련나무를 봐 온 우주를 돌아와 기어코 하고 싶었던, 끝내 해야만 했던 말
묵묵부답은
바위의 구조일 뿐
꽁꽁 묶여 감금당한 그날의 시간들에 대해 얘기해 봐 물속에서 마른 뼈들이 풀어지는 미역처럼 산란하는 햇빛처럼 바위를 열고 침묵을 꺼내봐
잠복해 있던
어둠이 쏟아져 나올거야
강요당한 별빛과 달빛 사이에서 여자들의 입술이 뭉개지고 찢어지고 있어, 초고처럼 어설픈 입장으로 울음을 삼키겠지
입속에 백만 마리의 물고기를 물고
돌이 되어라
불필요한 주문을 외우겠지
⸻계간 시 전문지 《애지愛知》 202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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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옥 / 1965년 충남 청양 출생. 2002년 《실천문학》으로 시 등단. 시집 『비대칭의 오후』 『오렌지는 슬픔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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