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을 나는 돌
돌이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홀로 이 세상에 와서 삶이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니라는 걸 내게 깨닫게 해 준 것은 돌이다 돌과 함께 나는 하늘 아래 순하게 늙어간다
나는 돌이 두리번거리는 걸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오 로지 자신만을 믿으며 제 가는 길 흔들림이 없다 가만히 돌 옆에 앉으면 돌이 세상살이 온갖 비밀 들릴 듯 들 릴 듯 들려줄 것 같지만 이건 오판이다 삶은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듯 수천 개의 입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돌은 나보다 훨씬 먼저 세상에 태어나 내 입이 내뱉은 욕설 모두 기억하고 있다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
돌이 저리 단단한 것도 다 그 과묵함 때문일 터, 침묵이 쌓이고 쌓여 단단해진 돌은 결국 무거워서 날지 못한
다 하지만 돌의 몸속에는 오래된 날개의 기억이 숨어 있다 어쩌다 돌이 제 몸을 부르르 떨며 사람들의 손을 뿌 리치는 건 돌이 깃을 치며 세상을 날고 싶다는 것이다
그날 나는 보았다
똑똑히, 비장하게 손에 꼭 쥐어지는 돌을 세상 두려울 게 없는
바로 그때가 돌에게서 날개가 돋을 때이다
기억하라 거기가 어디든 돌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오래오래 엎드려 있는 건 날개가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날개가 돋음으로써 돌은 비로소 완성된다
- 시집 『각시붓꽃』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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