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詩 /각시붓꽃

이별 의식儀式

여만 2021. 3. 5. 11:23

이별 의식儀式

  

 

 

 

 집 앞 산벚나무 가지에 앉은 후투티 한 마리 잠시 머 물다 석양빛을 움켜쥐고 공중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다시는 안 올 듯이 떠났는데도 나무는 담담하다 다만 잔가지 하나를 팽팽히 휘어 잠시 흔들, 하고는

 처음 그대로다

 

 저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별의 방식

 

 한때 눈앞에서 사라진 후투티가 그랬듯이 언젠가 당신의 푸른 손이 가만히 앉았다 떠난 어깨 위로 한 줄기 바람이 나부끼고

 

 어느 날 불쑥, 바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서늘한 늦가을을 가져다주면 나무는 바람결에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그리움 한 잎까지도 내던져버릴 것이다

 

 그래 그렇더라도 나는 모질지가 못하여서 더러는 혼자서 산벚나무를 오래 올려다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내가 애써 나무가 되어가려 한다면 믿겠습니까?

 

 

 

- 시집 『각시붓꽃』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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