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사람
“촌사람 다 됐네!”
밭일하고 들어오는 내게 아내가 말한다
촌사람,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얼마나 기특한 향내인가
촌사람이란 말의 촌村 자만 들어도 나는
똑바로 걷는 것보다는
시냇가를 흐르는 물처럼 천천히 맨발의 소리를 내며 걷게 되고
산나물 뜯으러 간 숲속 샛길에 주저앉아 실컷,
잊힌 꽃이나 새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아 좋다
서로 귓속말을 나누는 듯 어깨를 기댄 채 늙어가는
촌집 같은,
그래 누가 뭐래도 난 촌놈이다
촌사람, 하고 부르는 소리를 좇아가면
금세 텃밭 상치처럼 풋풋해지는 아내가 나타나고
나를 위해
밑이 잘 든 뭔가가 꼭
줄줄이 따라 나올 것만 같다
- 시집 『각시붓꽃』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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