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반주 첼로 소나타
장요원
현들이 공중에 매여 있다
빼곡히,
수직의 자세로 허공의 천장과 바닥을 잇고 있다
그 탄력을 터뜨리는 지상의 수많은 손가락들
빗방울의 형식으로 음표들이 터진다
비의 음계는 동물성일까요
우우 우짖는 소리
맹렬하게 열어젖히는 성대들
단풍나무의 무수한 손끝에서 울음이 흘러나오고
담장 밑에서 고양이의 신음이 끊어졌다가 이어진다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담쟁이넝쿨의 왼손과 오른손들,
지붕들은 범람하기 위해 솟고 있는 걸까요
팽팽하던 공중이 느슨해지자
가로등 불빛이 일제히 폐활량을 늘리기 시작한다
높이를 벗어 버린 소리들은 골목 어귀를 지나고 있을까
지루한 골목은
낡은 연인들이 헤어지기 쉬운 배경
길게 내린 그녀의 속눈썹도 슬픔에 매여 있었지
저녁이 낮은음자리로 몸을 낮추는 시간,
호흡이 느려진 후렴이
긴 목울대를 향해 강 쪽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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