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사과나무에게 묻다 - 김규진

여만 2015. 11. 13. 07:00

사과나무에게 묻다

 

  김규진

 

 

사과나무여

너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네 영혼은 너의 사과를 어떻게 붉게 만드는가?

 

오가는 길옆에 사과나무가 있어

언제나 나는 물었다.

아침의 안개로

비틀거리는 저녁의 발걸음으로

 

사과나무여

너에게는 뛰쳐나가야 할 출근도

안고 돌아와야 할 지폐도 필요 없겠지만

너에게도 견뎌야 할 무엇이 있어

새들의 둥지를 두드리거나

바람의 팔을 붙들고 울기도 하는가?

 

지쳐 등을 기댈 때마다 너는

수천의 잎사귀를 헤집어

달빛 새긴 잎사귀 두어 개를 떨어뜨리지만

네가 새겨놓은 말들은 너무 깊숙해

나는 읽을 수 없다.

 

어떤 슬픔으로도 그려낼 수 없을 것 같은

연분홍 꽃무리

그저 눈부시기만 한데

사과나무여

너도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는가?

그곳에 네가 왜 서 있는지

왜 사과를 만드는지

누가 너의 사과를 가져가는지

 

네가 온종일 바람 속에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바람 속에 있다.

비틀거림으로 거센 바람 속을 더듬어 갈 때

사과나무여

너도 때로

나에게 묻기도 하는가?

 

나에게도 영혼이 있는지

내 영혼은 나의 사과를 어떻게 붉게 만드는지

 

 

  —시집『사과나무에게 묻다』(201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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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진 / 1959년 전북 정읍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0년〈문화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사과나무에게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