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소
이대흠
자신의 뿔로 들어가기 위해 소는
뒷다리를 뻗는다 서귀포에서 부산에서
뿔로 들어가 단단한 힘이 되어
세상의 고름을 터뜨리리, 소는 온몸을
뿔 쪽으로 민다 소의 근육을 따라 툭툭
햇살은 튕긴다 앞다리 들어 펄쩍
들어가고 싶다 소가 뛰면
뿔도 뛴다 젠장 명동에서 종로에서
뿔로 들어가고 싶은데 뿔은 또
저만치 앞서 있다 참을 수 없어 소는
속력을 낸다 뿔은 또
멀리 달아나고 뿔로 들어가고 싶어
소는, 나는
일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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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황소' 그림을 눈 앞에 보고 있는 것 같다. 힘찬 근육질의 황소, 머리에 무기처럼 돋은 뿔을 앞세우고 세상을 향해 두 뒷다리를 박차는 모습. 정의의 칼처럼 온갖 세상 불의에 맞서는 그 강렬한 힘은 우리의 가슴에 오래 잔향이 남는 작품이다.
그림과 동화된 시인의 모습에서 우리시회의 희망을 읽는다. 오, 이런 시를 읽는 맛에 이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지도 모른다. (20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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