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장석주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
장석주 1954년 충남 논산 출생. 1975년 〈월간문학〉 시 부문 신인상.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가작. 시집 『햇빛사냥』, 『완전주의자의 꿈』, 『그리운 나라』,『어둠에 비친다』,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어떤 길에 관한 기억』,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크고 헐렁한 바지』 등. 평론집 『풍경의 탄생』
'살맛 나는 방 > 시집 속에서 꺼낸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필 그림 - 함기석 (0) | 2013.01.27 |
---|---|
단단한 꽃 - 박소원 (0) | 2013.01.26 |
청어를 굽다 1 - 전다형 (0) | 2013.01.21 |
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다 - 이기철 (0) | 2013.01.19 |
가을의 기도 - 김남호 (0) | 2013.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