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 장석주

여만 2013. 1. 25. 08:29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장석주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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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1954년 충남 논산 출생. 1975년 〈월간문학〉 시 부문 신인상.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가작. 시집 『햇빛사냥』, 『완전주의자의 꿈』, 『그리운 나라』,『어둠에 비친다』,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어떤 길에 관한 기억』,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크고 헐렁한 바지』 등. 평론집 『풍경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