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접기로 한다 - 박영희

여만 2012. 7. 12. 09:00

접기로 한다


         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 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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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1962년 전남 무안 출생. 1985년 문학무크지 『民意』 3집에 「남악리」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 『조카의 하늘』『해 뜨는 검은 땅』『팽이는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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