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삽 - 정진규

여만 2011. 8. 25. 07:00

삽 

                    정진규(1939~ )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만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 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나를 문질렀다

 

 

*오늘도 내 마음의 곳간에 빛나는 삽 하나가 있다. 너의 뜰을 일궈 꿀꽃,퉁퉁이꽃...피워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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