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의 짧은 시’
-고이케 마사요(1959- )
미국 산타페의 욕실에서
새벽녘
오래오래 조용히 방뇨를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는
나와 이 소리밖에 없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 소리라 해도 내 자신이 내고 있던 거였지만
그것은 기묘하게도 외부에서 들려와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노파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그것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그렇지만 그것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시간
지금 여기 내가 없어요,
살아 있지 않아요,
이렇게까지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소리가 그치고
급속히 차가워져가는 실내에서
문득 조성된 무음의 덩어리
이것이 나, 나인가
보이지 않는 원형 모양으로 남은 생의 온도
너는 있었던가
거기에 있었던가
나는 있었다
살아 있었다
질문하는 소리가 닿기도 훨씬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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