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초대 - 이잠

여만 2023. 12. 26. 12:31

초대

 

   이 잠

 

 

 

꽃과 나비와 덩굴이 그려진 접시들을 탁자 위에 놓습니다

푸른 수국 수놓은 테이블 매트 위에서

수저와 젓가락은 가지런히 말이 없습니다

굴참나무와 백합나무 숲 틈으로 잠깐 들어오는 햇빛

저와 함께 오 분만 더 있다 가세요

주물 워머에선 밀랍 초가 빛나고

찻물은 다정하게 끓고 있네요

 

크고 작은 꽃무늬 접시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갓 낳은 달걀과 붉게 익은 토마토를 끓여

오목한 그릇에 담아 차려 놓겠습니다

깊게 팬 통나무 탁자의 나이테를 손끝으로 따라가다가

마지막 한 자리는 비워 두겠습니다

먼 데를 휘돌아 사랑이 나를 찾아온다면

그 자리는 당신의 것입니다

 

 

 

        —계간 《문예바다》 202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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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잠 / 충남 홍성 출생. 1995년 《작가세계》로 시 등단. 시집 『해변의 개』 『늦게 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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