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맛
이민하
오르톨랑은 아주 작은 새입니다. 아주 특별한 요리입니다. 이방의 요리사들은 입을 모읍니다. 프랑스의 영혼을 구현하는 맛이라나? 산 채로 새를 잡아 어둠 속에 가둡니다. 한 달 가까이 포도나 무화과 같은 달콤한 과일만 먹입니다. 새는 밤낮을 모르고 먹기만 합니다. 오로지 그러라고 눈알을 뽑기도 하니까요. 배가 터져 죽기 전에 아르마냐크에 절여져 오븐에서 구워집니다.
오르톨랑은 금지된 조류입니다. 금지된 메뉴입니다. 이방의 미식가들은 입을 숨깁니다. 하얀 냅킨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먹습니다. 잔인한 요리를 신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요. 어쩌면 귀한 요리를 신에게 뺏길지도 모르니까요. 통째로 입에 넣어 뼈와 살을 천천히 씹는답니다. 브랜디의 달콤함이 내장에서 터져 나올 때 극에 달합니다. 나는 프랑스 사람이 아닙니다. 더 길게 더 찬찬히 설명할 수도 있어요. 프랑스 사람처럼.
앞집에 사는 새는 눈이 예쁩니다. 아무도 여자의 이름은 모릅니다. 밤낮을 모르고 창문 속에만 있습니다. 새벽마다 울지만 코 고는 소리에 묻힙니다. 아무도 여자의 목소리는 모릅니다. 햇볕이 좋아요. 나는 몰래 손짓을 하지만 여자는 날지를 못합니다. 예쁜 눈을 뜨지도 못합니다. 방이 꽉 끼도록 살이 쪘습니다. 몸의 둘레가 벽에 가까워집니다. 나는 평범한 이웃입니다. 앞집의 창문을 훔쳐봅니다. 금지된 영역입니다. 누군가 저녁이면 하얀 커튼을 내립니다.
겨울의 숲과 해변에서 버려진 눈알들을 주웠습니다. 밤낮으로 어둠에 불렸습니다. 뚱뚱해진 울음 덩어리들을 음악에 절여 구웠습니다. 오로지 그러려고 눈물을 뽑기도 했으니까요. 까맣게 구워서 동공을 갈아 끼웠습니다. 그 눈으로 낭독을 저질렀습니다. 눈만 뜨면 누군가의 죽은 눈이었습니다. 이것은 평범한 시입니다. 금지된 언어입니까. 질문을 하는 손들이 하얀 종이를 뒤집어씁니다. 하얀 종이는 하얀 종이를 자꾸 뒤집어씁니다.
⸺《창작과 비평》 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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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하 / 1967년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모조 숲』『세상의 모든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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