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창문의 안부가 궁금하다 - 안명옥

여만 2015. 2. 1. 09:41

창문의 안부가 궁금하다

 

  안명옥

 

 

   누군가 내 창문을 흔들다 간다 창문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똑같은 풍경이라는 것 햇빛도 굴절되고 너의 말도 굴절되는 것 창문을 닫으면 더 잘 들리던 목소리 햇빛이 깊게 들어오는 창문을 가진 방에서 살고 싶다던 목소리 바람이 다녀간 창문의 안부가 궁금하다

 

   바람 많은 동네에 오래 살던 창문 안으로 들어와 본 시간들 그 창문엔 누가 살까 사랑을 나눌 때마다 신음소리 다 막아준 창문 창문이 들이는 날씨나 생활의 온도에 상관하지 않고 둘러싼 벽이란 벽이 다 창문이었으면 하던 창문 모든 관계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던 창문 한동안 깨진 창문을 가지고 살았다 깨진 창문으로도 삶이 살아간다는 걸 알았다

 

   물끄러미 창문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창문이 운다는 건 진실이 아니다 오른쪽 블라인드를 올리면 병원이 보이고 왼쪽 블라인드를 올리면 러브호텔이 보이는 내 방 창문, 창문에 기대어 사는 가시나무 한 그루 무성한 바람의 잎과 소음의 가지를 뻗으며 흔들릴 때 허기진 저녁이 내 창문을 점령한다 무표정한 내 창문은 아직 불이 켜지지 않는다

 

     —웹진《시인광장》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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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 / 경기 화성 출생.  200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서사시집『소서노』, 시집『칼』. 현재 경기도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에창작 전문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