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만드는 여자
문정희
딸아,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그리고는 쉬이 쉬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밀 때
비로소 너와 대지가 한 몸이 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푸른 생명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한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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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 수여. 진명여고 재학시 시집 <꽃숨> 발간. 1969년 《월간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등단. 1976년 제 21회 현대문학상 수상. 2010년 제7회 시카다상 수상. 시집 <문정희 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시극 <납의 탄생>, <날개를 가진 아내>, 산문집 <젊은 고뇌와 사랑> <청춘의 미학> <사랑의 그물을 던지리라> 등.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경력. 현재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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