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모르는 것
이운진
오른손은 욕망에 순교하였다
숟가락을 쥐고 연필을 쥐고
더 많은 밥과 더 아름다운 거짓을 위해
슬픔이 필요한 반성을 버렸다
칼을 쥐면
수만 년 매 맞아 본 적 없는 산과 강에게도
무너져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
고통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
오른손과 오른손이 만나
더 큰 모래성을 꿈꾸었을 땐
더 큰 오른손이 발명되었다
핏줄이 끊기고 손금에 균열이 간
오른손은 더 이상
이슬을 잡을 수 없는 손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른손은 모른다
세상의 사람이란 사람 모두
이슬보다 다치기 쉬운 눈물을 가지고 있어
언젠가 그 모래성이 눈물을 불러오고 말 것을,
눈물로도 홍수가 난다는 것을,
—《시와 경계》 2010년 겨울호
--------------------
이운진 / 경남 거창 출생. 동덕여대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199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살맛 나는 방 > 시집 속에서 꺼낸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날 우표 -이대흠 (0) | 2011.11.19 |
---|---|
그림자 -배영옥 (0) | 2011.11.18 |
고양이 바람 -조연향 (0) | 2011.11.16 |
겨울 호숫가에서- 장석남 (0) | 2011.11.15 |
인중을 긁적거리며- 심보선 (0) | 2011.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