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오른손이 모르는 것 - 이운진

여만 2011. 11. 17. 11:00

오른손이 모르는 것

 

                   이운진

 

 

오른손은 욕망에 순교하였다

숟가락을 쥐고 연필을 쥐고

더 많은 밥과 더 아름다운 거짓을 위해

슬픔이 필요한 반성을 버렸다

칼을 쥐면

수만 년 매 맞아 본 적 없는 산과 강에게도

무너져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

고통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

오른손과 오른손이 만나

더 큰 모래성을 꿈꾸었을 땐

더 큰 오른손이 발명되었다

핏줄이 끊기고 손금에 균열이 간

오른손은 더 이상

이슬을 잡을 수 없는 손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른손은 모른다

세상의 사람이란 사람 모두

이슬보다 다치기 쉬운 눈물을 가지고 있어

언젠가 그 모래성이 눈물을 불러오고 말 것을,

눈물로도 홍수가 난다는 것을,

 

               —《시와 경계》 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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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진 / 경남 거창 출생. 동덕여대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199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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