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우(驟雨)
윤강로
외딴 길 가다가 소나기 만났다
멀리서 왔나 보다
비틀대는 빗줄기도 있다
맨발로 거친 돌밭을 건너온 발가락의 상처 실핏줄 내음
하늘은 실핏줄 무늬로 번개쳤다
떼로 몰려 온 빗줄기들이 하얗게 질린 입술로
나를 에워쌌다
나는 낮은 처마 밑에서
원시인처럼 순수하게 두려웠다
그럴 때가 많았다
나는 타인들인 빗줄기에 갇혀
눅눅했다
그럴 때면 나의 빗줄기 한 가닥이 와서
서로 심금(心琴)의 빗줄기를 튕겼다
머리카락 카락 빗줄기 얼굴 감미롭게 간질이고
눈 밑 잔주름 희미하게 웃던 빗줄기
나의 애니미즘* 빗줄기다
생생하게 귓전에 속삭이는
————
* 애니미즘(animism) : 정령설(精靈說)
—《시산맥》201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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