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꽤 큰 사진 한 장 -강은교

여만 2011. 8. 2. 08:30

 

나는 당신이에요 떠나간 당신이에요

구름에서는 미래가 빗방울이 되어 떨어지고 있는 모양이야

 

 

     꽤 큰 사진 한 장


                                           강은교

 

                          

  내 책장 한 구석에는 한 여자와 남자가 아주 다정히 서 있는

  꽤 큰 사진 한 장이 있지

  황금 칠이 얹어진 갈색 나무틀에

  그 여자와 그 남자는 환히 웃으며 껴안고 있어

  배경으로는 어느 왕조 궁궐의 담과 긴 머리카락 출렁이며 있는

큰 나무,

  태양의 입술이 구름을 핥고 있어


  태양은 말하는 것 같아,

  사랑의 기쁨이 나타났어요

  옆에서 사랑의 슬픔이 살짝 기대는군요

  사랑의 기쁨이 말을 꺼내니

  옆에서 사랑의 슬픔이 대답하는군요


  그러다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사진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어, 꼭

껴안은 바람이 그 뒤로 달려나가고 있어, 빗방울도 마악 뒤따라 달

려왔지, 그들은 빗방울을 마셨어, 달콤하디 달콤한 그것, 미래의

설탕이 들어있는 그것, 과거의 쪼코렛이 흠뻑 발라진,


  나는 당신이에요

  떠나가는 당신이에요

  떠나간 당신이에요


  여기서 보이진 않지만, 구름에서는 미래가 빗방울이 되어 떨어

지고 있는 모양이야

  지나간 미래가

  지나간 과거의 허리가

 

 

 강은교-1945년 함남 홍원출생. 1968년<사상계>로 등단

시집<허무집><풀잎><초록 거미의 사랑>


천양희,장석남 외『시, 사랑에 빠지다』현대문학. 2009.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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