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서정
마른장마 길게 이어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서 있고
구름 한 점 없이 지워진 하늘에 등장하여 본체만체 나를 지나치는 한 마리 백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바람과 헤어진 후 침묵시위에 들어간 마당 한 귀퉁이 바람 개비, 가만히 눈 감으면 그 작고 붉은 입술을 오므려 까치발로 슬쩍 내 뺨에 포갤 것만 같은 앵두나무, 내가 한 이름을 반복해 암송하는 버릇처럼 온종일 한 소절만 계속 제 울음을 연주하는 뻐꾹새, 흰눈보다 더 하얗게 분장한 마가렛 꽃이 핀 뜰을 느린 율동으로 미끄러지는 노랑나비 한 쌍
너무 뻔해서 놀랄 것도 달라질 것도 없는 하루가 한없 이 흘러가는 하지夏至 즈음
- 시집 『각시붓꽃』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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