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忌日 일기
언제나 곁에 있지만 언제나 곁에 없는 당신,
당신이 남기고 간 외로움의 유산은 이미 이골이 난 지 오래예요
당신의 그 날과 함께한 나의 기억 저편은 서로 같겠 지요
그런데 왜 우리의 그 날은 그리움 없인 만날 수 없을까요
뒤뜰 앵두꽃은 해마다 돌아와 피고 또 피는데 아무리 불러도 당신은 되돌아오지 않네요
가만히 눈감으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당신의 목소리 어디선가 다시 귓전에 들려올 것만 같은데 오늘 여기,
당신 기도의 중심이던 이름들이
먼 그날로 돌아가 당신을 추억하고 있어요
이제는 너무나 아파서
더 그리운 것들과도 토닥토닥 헤어져야 해요 이별이란 게 그렇듯이
당신이 없어 더 사나워졌다고 믿는 차디찬 도시의 골목으로
우린 또 멀어질 거예요
꿈결에 만난 한 겹의 온기를 두르고 낯선 사람이 되어
- 시집 『각시붓꽃』 (2020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