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손의 외출 - 권주열

여만 2017. 2. 4. 11:34

손의 외출

 

    권주열

 

 

말 대신 수화를 하는 사람을 본다

말이 몸 바깥에 있구나 하는 순간

 

컵을 쥔 손을 떨어뜨렸다

 

쟁그랑 하는 소리가 눈 속에서 난다

 

손이 몸 안으로 떨어진다

얼떨결에 손을 잡으려던 말을 놓친다

 

무슨 말이 더 남았을까

여전히 허공에 쟁반을 받쳐 두고

 

구름 밖으로 기다랗게 빠져나가는 비처럼

말 밖으로 손이 빠져나가는 중이다

 

손가락 마디가 사라지는 쪽으로

침묵이 컵을 들어 올린다

 

    —『붉은 열매의 너무 쪽』(2017)에서

--------------

권주열/ 1963년 울산 출생. 2004년 《정신과 표현》을 통해 시 등단. 시집『바다를 팝니다』 『바다를 잠그다』『붉은 열매의 너무 쪽』.

 



'살맛 나는 방 > 시집 속에서 꺼낸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을 켜다 - 한세정   (0) 2017.02.13
뜻밖의 세계 -박지웅  (0) 2017.02.10
기차 - 강은교  (0) 2017.01.30
눈 내리는 저녁 창가에- 이진숙  (0) 2017.01.23
비파나무 - 이경교   (0) 2017.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