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외출
권주열
말 대신 수화를 하는 사람을 본다
말이 몸 바깥에 있구나 하는 순간
컵을 쥔 손을 떨어뜨렸다
쟁그랑 하는 소리가 눈 속에서 난다
손이 몸 안으로 떨어진다
얼떨결에 손을 잡으려던 말을 놓친다
무슨 말이 더 남았을까
여전히 허공에 쟁반을 받쳐 두고
구름 밖으로 기다랗게 빠져나가는 비처럼
말 밖으로 손이 빠져나가는 중이다
손가락 마디가 사라지는 쪽으로
침묵이 컵을 들어 올린다
—『붉은 열매의 너무 쪽』(201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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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열/ 1963년 울산 출생. 2004년 《정신과 표현》을 통해 시 등단. 시집『바다를 팝니다』 『바다를 잠그다』『붉은 열매의 너무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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