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해요?/초록섬 스케치

달빛을 읽는 시간

여만 2014. 11. 4. 20:26

 때는 11월 초순,

어느덧 초록섬에도 가을이 깊어 간다.

내가 이 세상에 와 몇 해째 연애하는 가을이던가.

어스름이 내리는 마당에서 나는 잠시 사색한다.

 

 돌솟대를 칭칭 휘감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이 잔뜩 상기된 낯빛이다.

20대의 연인처럼 바짝 붙어 있다고 문득 연상이 들자

저 모습이 왜 그렇게 우스운지..... ㅋㅋ  

 

  

 

 

 신음소리 없는 저 전위, 저 달아오른 체온이 과연 대리석 속으로 스며들 수나 있을까?

 

 "아이고 바보, 넌 바보야."

"사랑이란 결국 그런 게야."

숨 할딱이며 으스러져라 껴안아도 낯설기 만한 사랑은 있게 마련.... 

 

 아무리 귀를 갖다대도 심장박동 소리 들리지 않는

오로지 칠흑이 지배하는....돌덩이.

"알아? 단단한 그 돌덩이 말야." 

 

 수많은 골목을 돌고 돌아 너를 만났지만, 결국

사랑이 뭔지를 모르는 바로, 여기, 누구처럼

담쟁이덩굴도 비로소 가을 늦게서야 알았나 보다.

저리 잔뜩 상기된 표정을 보니 말이다. ㅎ

 

 

 

 

 빨강 함석지붕 위로 살짝, 얼굴을 내민 저 민낯, "누구야?"

오늘밤 야경이 좀 뭐하다 했는데 홀연 나타난 저 얼굴.....

나의 하루는 지쳤고

이제 막 집으로 돌아와 침몰하려는데 저기 저,

창백한...... 

 

 밤을 여행하는

달의 바깥으로 여백이 차고 깊다.

 

 그래 오늘밤은 나를, 너를, 더 알고 싶다. 아니다.  그냥

알고 싶지 않다.

홀로 이렇게

아무에게도 웅크리고 있는 내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

 

 내일의 나,,,,,,

늘 그랬지만 떠올리려 했지만 이번에도 안개 속이다.

그래서 알고 싶지 않은 게다.

 

 

 

 간간이 먹구름 끼었던 시간들이 이어지던 어제 그리고 오늘,

도 이제 닫히려 한다.

나는 애써 바깥을 지우고 여기 앉아 오랜 습관처럼 멀거니 먼 데를 본다.

 

 달빛에 귀를 기울여도 본다. 

무슨 말인가를 들려줄 것만 같은

저 달,,,,,

 

 

 

 어둠에 잠식당한 들판은 점점 좁아지는데 어디선가, 문득 바람이 분다. 

북나무가 몇 남은 이파리들조차 버거운지 하나씩, 여러 개를 지운다.

 

 미련없이, 털어낼 건 빨리 털어내야 한다는 듯.....

 

 이렇게 가을은 깊어 가는데

어둑발 속에서 들리는 밤기러기떼 소리,

대체 이밤을 거슬러 어디를 나섰는지.....

 

 어둡다가 점점 더 어둡다가 되는 시간, 아무래도 오늘은 저 어둠 속에 귀를 걸어두고 자야겠다.

(201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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