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새장을 키우는 사람 -정채원

여만 2014. 2. 3. 07:00

새장을 키우는 사람

 

   정채원

 

 

 

   내 갈비뼈 사이에 똥을 싸는 새들, 울음을 바닥에 점점이 떨어뜨려 놓고 오른쪽 구석으로 몰려간다 옆구리가 결린다 새가 창밖을 보고 있어 블라인드를 반쯤만 내린 방, 어느 쪽에 먹이가 더 많은지 어느 비탈에 걱정이 많은지 눈먼 방이다 먹이보다 빛이라는 듯 제 그림자를 끌고 창가로 몰려드는 새들

 

   내 그림자를 쪼아 댄다 쿡쿡, 전선처럼 얽힌 내 신경줄 위에 앉아서 쿡쿡, 방향 없이 울어댄다 쿡쿡, 운석이 폭발하는 밤 쿡쿡, 쑤시는 등골에 별 두 조각이 박혀 쿡쿡, 새장이 되었다

 

   새장에 갇히는 울음도 있나 날개를 가둘 수는 있지 울음을 가둘 수는 없지 잠글 수는 더욱 없지 나는 다만 새장을 키우는 사람

 

   울음소리가 전과 다른 새들, 나는 왼쪽으로 돌아눕는다 횡격막 밑을 서성이다 새장으로 들어가 스스로 갇히는 새도 있다 반쯤 썩은 붉은 돌을 문지방에 토해놓고 밖을 내다보는 새들, 나는 얼른 벽 쪽으로 돌아눕는다 너를 재우기 위해 나를 재운다 새들을 잠시 다른 별에 풀어놓는다

 

   어떻게든 너를 다시 새장 속으로,

 

 

   —《시산맥》2013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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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원 / 서울 출생. 1996년《문학사상》으로 시 등단. 시집『나의 키로 건너는 강』『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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