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그런 날 -한인준

여만 2013. 7. 25. 07:00

그런 날

 

    한인준

 

 


그런 거 있잖아.
그런게 뭔데.


서로 마주 보고 앉은 탁자에서 '그런'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왜 자꾸 나는 당신에게 '그런'걸 말하고 싶은 걸까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라니.


나는 탁자 위에 놓인 빈 꽃병을 본다
당신은 탁자를 치운다
거실 바닥에 그 빈 꽃병이 놓인다
말없는 당신이 방으로 들어간다. 거실이
뒤따라간다.


우두커니 나는 혼자서 다른 '꽃병'을 떠올린다. 떠올린 '꽃병'에
물이 담긴다
'꽃병'이
부서진다. 나는 젖은 채로 새로운 '꽃병'을 사러 나간다
돌아가지 않는다
길거리에 골똘히 서서 '꽃병'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꽃병' 탓을 한다


'그런' 걸 설명하지 못하거나
'그런' 걸 설명했다고 착각하기도 해서


마르지 않은 채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만들고 부서
뜨린 수많은
'꽃병'들, 오늘은 모두가 젖어 있다

 

- 2013년 《현대문학》 신인상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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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대학교 극작과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