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최하연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을 책상 위에 그려놓고, 가만 귀 기울이고 있어요, 당신의 소원은 검은건반에서 뛰어내리는 것, 그리하여 일생일대의 화음으로 나를 부활시키는 것, 당신의 경전마다 엉터리 활자를 찍어놓고, 페이지를 봉인하고 있어요, 나는 나의 다음 페이지가 무조건 될 수 없다는 것, 우주를 한 바퀴 돌아 신발을 벗으며 ‘그것 참’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당신이 떨어지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나도 당신이 있던 그곳을 향해 뛰어오를 수 있다면, 당신의 멈칫함이 나를 일깨우는 바로 그 주문이길, 두들겨라, 두들겨라, (나의 건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나의, 나를 위한 마침표는 언제나 나의 시작 전에 찍히고 있어요, 도돌이표 마디마다 당신은 돌아오고 있겠지요, 가로지르는 모든 것들로 하여금, 당신을 향한 나의 좌표를 잃게 만들고 싶어요, 당신은, 또다시 그 높은 절벽, 검은건반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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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연은 언어에 대한 특별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시적 언어의 극한이 어디로 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인이다. 이는 언어의 세계와 사물의 세계 사이를 연결해주는 통로로서 시가 얼마나 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회의하는 일에서부터 비롯되거니와, 이러한 자의식으로 인해 시는 세계를 우리의 인식장 앞으로까지 내밀하게 당겨오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우리의 혀 바깥으로 밀어내는 언어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끝없이 언어의 그물 바깥으로 도망치는 세계와 이를 포획하려는 언어 사이의 물고 물리는 추격전 도중에 최하연의 시는 돌연 어떤 특이한 영역으로 공간 이동을 감행한다. 그렇게 시가 도착한 곳은, 가장 가깝게 있다고 여겨진 대상이 실은 가장 먼 곳에 위치하고, 반대로 가장 멀리 존재한다고 느껴진 타자가 실상 내 안의 가장 깊숙한 갈비뼈 같은 곳에서 칼을 품고 있는(“너는, 다시, 내 늑골 깊숙이, 칼을 숨기고”), 치명적인 시공간이다.
이러한 괴이한 관계는 ‘언어’와 ‘세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연인과의 사랑이 이와 닮지 않았는가. ‘피아노’는 이러한 언어의 문제를 사랑의 문제로까지 확장시킨 매력적인 시이다. 이 시에서 당신과 나는 각각 반음을 사이로 두고 피아노의 건반 위에 서 있다. 건반이라는 다분히 규정적인 세계 안에서 당신과 나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실상 음과 반음 사이에는 또 다른 음의 분할선들이 무한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랑하는 당신과 나 사이는 때로 “우주를 한 바퀴 돌아”야 할 거리로 느껴질 수도 있다. 가깝기에 도리어 그토록 아득한 너와 나 사이의 간격으로 인해, “그것 참”이라는 허탈한 고백을 내뱉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생일대의 화음”으로 나와 당신을 연주하고 싶다는 욕망만은 지칠 줄 모르는 것이기에, 우리의 사랑은 “도돌이표”라는 법칙에 따라 오늘도 검은건반 위에 올라 기꺼이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 이 영원할 것 같은 찰나의 낙차를 감당하려는 세상의 모든 연인들이여, 두들기자, 두들기자.
강동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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