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되기
김주대
비딸리의 샤콘느 G단조는 명주실 물결처럼 흘러다녀요
머리로 소리가 들어올 때 콧구멍을 찌르는 것처럼 아파요
집중하여 듣다가 참말로 코피가 나기도 하는데
슬픈 음악을 듣는 몸은 물의 방이 됩니다
물을 담은 얇은 피부가 가늘게 흔들릴 때 목구멍 안으로 들어가
제가 제 속에 앉아요 그러면
자궁 이전의, 제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였을 적 냄새가
목구멍으로 올라옵니다
눈이 깊은 조상들은 커다란 눈물 덩어리 같은 음악이었던 거예요
발바닥에서 차오르는 음들이
저수지 물처럼 가슴의 어두운 기슭에 와서 부딪쳐요
찰랑거리며 앉아 먼 데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음악은 멀리 가지요, 아주 멀리
누가 제 손을 잡아보세요 음들이 식은땀처럼 흐를 거예요
누가 제 몸에 코를 가져다 대보세요
슬픈 것들의 냄새가 이런 거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겁니다
그리스 레지스땅스 데오도라키스는
음악으로 저항하다가 음악이 된 사람입니다
아주 먼 나라 그의 머리카락에서 사시나무 이파리처럼 흘러나오는
음악의 달큰하고 시큼한 냄새를 맡을 수가 있어요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사나운 개가 짖을 때
개의 입에서 개의 분자가 방출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믿어요
그러니까 몸은 음악의 분자들을 흡입하면서 촉촉해지는 거지요
눈물은 눈에서 나는 게 아니라
심장이나 발바닥 이런 데서 흐른다고 해도 돼요
봐요, 이렇게 몸을 기울이기만 해도 음이 출렁, 하잖아요
노래를 부를 겁니다
머리를 들고 입을 벌리면 소리의 분자들이 허공에 방출됩니다
노래는 바람을 타고 가서 멀리
어두운 생을 지고 누운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찰랑거릴 거예요
그리고 그들과 함께 냇물처럼 흐를 겁니다
분명해요 진짜로 그렇게 믿으면 그렇게 돼요
—시집『그리움의 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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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 / 1965년 경북 상주 출생.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9년 《민중시》, 1991년《창작과비평》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도화동 사십계단』『그대가 정말 이별을 원한다면 이토록 오래 수화기를 붙들고 울 리가 없다』『꽃이 너를 지운다』『나쁜, 사랑을 하다』『그리움의 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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