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정숙자
가슴둘레 잘못 재면 어깨가 울지
목 잘못 재면 뒤품이 울고
총길이 등길이 소매길이
어디라도 잘못 재는 날이면
온몸 비뚤어지지
눈금 희미할 때면 침묵이 더 화사할지도 몰라
솔기 고운 말 한 벌 짓기 위하여
불씨도 당겨 놔야지
누구에겐가 입혀줄 만한, 누구에겐가 받고도 싶은
그런 말 한 벌 짓기 위해선 가위질도 어쩔 수 없지
때로는 너를 위해
혹은 그와 나를 위해서
일부러 꼭 끼는 말 찾기도 하지
긴가 여기면 짧고
짧은가 접으려면 너무나 긴 삶
팔고 사고 입는 말들이 잠을 축내는 날들도 많지
다리미는 주름산 오르내리고
가느다란 실과 바늘도 또박또박 천 년을 걷지
뒤에 남은 외줄기 발자국들이
결국 한 벌 나를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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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군 부용 출생.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철학교육전공.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1987년 제1회 황진이문학상 수상. 시집 『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그리워서』『사랑을 느낄 때 나의 마음은 무너진다』『이 화려한 침묵』『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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