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가만 있자 그러니까 그게 거, 할 때의 그 가만 있자에 대하여 -조재도

여만 2012. 6. 30. 09:00

가만 있자 그러니까 그게 거, 할 때의 그 가만 있자에 대하여

             조재도


어떤 말이 저렇게 깨달음의 등불을 오롯이 드러낼까
어떤 말이 저렇게 강물처럼 흘러 순간마다 빛날까
어떤 말이 늘 서서 걸으며 달려가는 우릴 멈추게 하겠는가
그 자리에 멈추어, 앉아, 뒤돌아보게 하겠는가
가만 있자의 그 순간이 어디
사람에게만 있겠는가
소주 집에 앉아 씩둑거리는 사람에게만 있겠는가
날아오를 자리 가늠하며 대가리 까댁이는
미루나무 꼭대기의 저 까치에게도
주춤대며 개천 다리 건너오는
오늘 아침 샛강의 자욱한 안개에도
그러니까 그 자세, 가만 있자의
낮은 걸음 자세는 깃들어 있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한 순간 불티처럼 튀어나온 그 깨달음에
극(極)으로 치닫던 마음이 돌아앉는다
제 몸 진저리치며 세우는 그 자리에
고양이
쥐의 일에
슬퍼도 하고
밭에서 돌아온 소가
부어오른 제 발등을 핥기도 한다

어느 말이 저렇게 어두운 골방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담뱃불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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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도 / 1957년 충남 부여출생. 공주사범대학 졸업. 천안 목천중학교 교사. 시집 『백제시편』『교사일기』『쉴 참에 담배 한 대』『사십 세』『그 나라』『좋은 날에 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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