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나무를 본다 - 배진성

여만 2012. 6. 22. 09:00

 

나무를 본다

 

 

        배진성

 

 

 

나뭇잎은 손일까 발일까 나뭇잎은 손 같기도 하고 발 같기도 하다 새들이 벗어놓은 신발 같기도 하고 장갑 같기도 하다 나뭇잎은 또한 입 같기도 하고 귀 같기도 하고 코 같기도 하다 태어날 때 눈이었던 나뭇잎이 자꾸만 코가 되고 입이 되고 귀가 된다

 

나뭇가지는 팔일까 다리일까 나뭇가지는 팔 같기도 하고 다리 같기도 하다 새와 새집을 끌어안고 포옹하는 것을 보면 팔 같은데, 나뭇가지 사이에 돌멩이를 끼워 시집을 보내거나, 접을 붙이거나, 열매를 낳아 기르는 것을 보면 다리 같기도 하다

 

나무 기둥은 몸통이 맞는 것일까 그 가슴 속에 심장은 있는 것일까

 

나무뿌리는 발일까 손일까 가장 낮은 곳에서 떠받들고 살아가니 발 같은데, 평생 흙만 파먹고 살아가니 시골 어머니 손 같기도 하다

 

다시 나무를 본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보니 나무가 나무로 보인다 그 동안 나는 나무를 자꾸만 사람으로 보려고 해서 나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무는 그 무엇도 아닌 오직 하나뿐인 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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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진 성 : 1966년 출생 1988년 《문학사상》 신인발굴 당선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서울예대 졸업, 방송대학 졸업 동국대학 대학원 중퇴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지상에서』『길 끝에 서 있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