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고장 난 녹음기 - 이태선

여만 2012. 3. 29. 11:54

고장 난 녹음기

             이태선(1959~ )


그대야, 내 입술가의 고장 난 고요를 보아줄래,
박살난 장독처럼 내가 네 손끝에서 부서지고 조각조각
유혹이 되어볼까

너를 스쳐 내가 네게 들러 붙어버린 엿이라 할까
우리는 서툴러서 너 따로 나 따로
입속 쩝쩝대는 생을 주고받아볼까

낑낑대는 강아지 곁의 티끌처럼 우리는 추워지고
문짝 떨어진 그런 날들이 연속으로 오고

그대야, 부러진 지팡이와 말할까
침대 아래 떠내려와 있는 저 통나무 타고
내리꽂히는 입속 폭포수나 틀어 버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