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아름다운 위반 (외) -이대흠

여만 2011. 12. 31. 07:58

아름다운 위반

 

     이대흠

 

 

 

기사 양반! 저짝으로 조깐 돌아서 갑시다

어칳게 그런다요 뻐스가 머 택신지 아요?

아따 늙은이가 물팍이 애링께 그라제

쓰잘데기 읎는 소리 하지 마시오

저번챀에 기사는 돌아가듬마는…

그 기사가 미쳤능갑소

 

노인네가 갈수록 눈이 어둡당께

저번챀에도

내가 모셔다드렸는디

 

 

 

오래된 편지

 

 

 

큰형은 싱가포르로 돈 벌러 가고

물레에는 고지서만 쌓이었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신 어머니는

어깨 너머로 겨우 한글을 깨쳤지만

혼자서 편지 쓰기에는 무리였다

보일러 공인 큰형 덕분에 나는 중학교에

들어 갈수 있었고 어머니가 입으로 쓰시는 편지를

양면지에 옮기는 일을 하였는데

맞춤법도 없는 편지는 큰형을 곧잘 울리고

 

큰 악으야 여그도 이라고 더운디 노무 나라에서 얼매나 땀 흘림시롱 고상허냐? 니 덕분에

아그들 학비 꺽쩡은 읎다마는 이 에미가 니럴 볼면이 읎따 늑 아부지도 잘있고 아그들도

잘 있시닝께 암 꺽쩡 허들 말고 몸조리나 잘 하그라 저 번 참 편지에 내 물팍 아푸냐고

물었는디 내 몸땡이는 암상토 안항께 꺽쩡얼 허들 말어라

 

그럴 때면 나는

편지에 계절 인사가 있어야 한다고 우겨댔는데

그러면 어머니는,

 

속닥새가 우는걸 본께 밤이 짚었구나

샐팍에 있는 수국이 허뿍 펴 부렀따

이러다가,

그 까튼거 몰라고 쓴다냐

기냥 몸이나 안 아픈지 으짠지 고것이 더 중하제

느그는 성이 짠하도 안 하냐?

뙤약벹에서 내 자석이 피땀 흘려 번 돈을

호박씨 까묵대끼 톡톡 끼리고 있짱께 중치가 멕힐락 함마이잉

이참 월급도 다 써불고

느그성 나오먼 통장이나 한나 줘사 쓸것인디

에미 애비 있능거시 도와주지도 못 함서

하면서 이내 눈물을 글썽이셨는데,

 

이쯤되면 나는 어머니가 했던 말을 마음대로 버무려

편지를 썼는데

 

큰 악으야 에미다 더운디서

일 하니라고 고상이 많지야 여그도 이라고 더운디

니는 오죽하겄냐 우째사 쓰꺼나 나오먼 통장 한나 둘라고 애끼고 애낀다마는

이참 월급도 아그들 납부금 내불고 농협 빚 조깐 쥐알려불고 낭께 읎어져

부렀단마다 차말로 내가 에미제만 헐말이 읎따 더운 나라에서 피땀 흘리고

이쓸 너를 생각하면 중치가 멕히고 숨이 멕힐락 헌다마는 우짜겠냐 벨도리가

읎어분다 못짜리 헐때부텀 울던 속닥새가 또 운것을 본께로 밤이 이상 짚었는

모양이다 니가 작년 가슬에 싱게 놓고 간 국화도 이상 커부렀다 깽벤 밭에는

감재랑 콩을 싱겠는디 아까 낮에는 아그들 데꼬가서 밭을 맸다 날이 징상나게

더와서 아그들은 풀 조깐매고 나서 뫼욕을 허드라 아그들 뫼욕 허는거 보고

이씀서 오매 우리 큰악으는 더운디서 엄마나 고상할끄나 생각허닝께 눈물이

나드라 모쪼록 여그는 암상토 안항께 니 몸 한나 건사 잘 허기 바란다 펜지를

쓴다고 쓰제마는 니 낫(낯)을 볼 면목이 읎어서 우짜꺼나 못낸 에미가 무단히

우리 큰악으만 고상 시키고 있구나 니가 그라고 피땀 흘림서 번돈을 한나도

모태도 못하고 우짤까 몰르겄다 아그들이 크먼 니 덕을 알랑가 몰르겄다마는

 

이쯤 쓰고 있노라면 어머니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나는 엄니가 불러 준대로 고대로 써부렀네

하고는 편지 말미에

 

큰성 나 대흠인디 엄니 시방 울고 있소

큰성 이약만 나오면 눈물부텀 흘린당께

모쪼록 몸 성히 잘 지내시고 나올 때게

샤프펜슬 꼭 잊지 마씨요이잉.

 

하고 두어 마디 붙이곤 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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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흠 / 1968년 전남 장흥 출생, 서울예대, 조선대 문창과 졸업. 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힘’ 동인. 시집 『물 속의 불』『상처가 나를 살린다』『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귀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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