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내 입속은 - 최호일

여만 2011. 10. 20. 09:30

내 입속은

 

                      최호일

 

 

 

내 입속은 하지 않은 말로 가득하다

 

타인의 어금니 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으며 가볍고 경솔하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사랑한다는 말을 치약처럼 짜내고 있다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내 입은 내 입속을 먹지 못한다

 

당신이라는 말은 과자 같다

 

질기고 캄캄한 입술로 당신을 개미처럼 뜯어 먹는다

 

참새 떼에게 새 쫓는 법을 가르쳐 줄까하고 말하면

 

서쪽 하늘 색깔로 입안이 환해진다

 

서쪽은 어느 곳에 있나

 

천개의 해가 천개의 가위를 들고 혓바닥을 잘라서 버린 저쪽

 

나의 입안은 약간 미쳤다

 

사람의 부러진 갈비뼈를 끼우고 태어난 천 번째의 생일

 

허공에 진열 된 옷으로 당신을 입을 수는 없다

 

내 입속은 당신의 입속에 두고 왔다

 

  

            —‘시인회의’ 제10합동시집 『꽃의 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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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 1958년 충남 서천 출생. 2009년 《현대시학》신인상을 통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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