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만 2010. 10. 1. 14:01

묵화(墨畵)

          -김종삼(1921~1984)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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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분 지나 밤 짧고 낮 날로 길어지며 농촌 일손 바쁘겠다. 언 땅 뒤엎는 쟁기질에 물 댄 논흙 몽글어 빗는 써레질. 소 또한 바쁘겠다. 종일토록 같이 일한 할머니와 소 함께 도란거리는 소리. 묵향 퍼지듯, 한지에 먹물 번지듯 우리네 서로 적막한 가슴속 촉촉이 적신다. 등산모에 담배 파이프 문 ‘시인학교 교장선생님’ 시인. 지극히 아낀 말로 그린 한 폭 정경이 할 말 다하게 하는 시의 모범. 색깔 없이 먹으로만 그린 묵화 담담한 맛이 삶 본디의 적막함까지 담고 있다. 행간에서는 워낭소리 달랑달랑 새 나오게 하면서.(조인스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