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만 2024. 10. 22. 11:24

파란 돌

한 강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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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1970년 광주 출생.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외 4편을 발표하고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등.

 

 

 

[시집 뒤표지 시인의 산문]

 

전철 4호선,

선바위역과 남태령역 사이에

전력 공급이 끊어지는 구간이 있다.

숫자를 세어 시간을 재보았다.

십이 초나 십삼 초.

그사이 객실 천장의 조명은 꺼지고

낮은 조도의 등들이 드문드문

비상전력으로 밝혀진다.

책을 계속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두워

나는 고개를 든다.

맞은편에 웅크려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파리해 보인다.

기대지 말라는 표지가 붙은 문에 기대선 청년은 위태로워 보인다.

어둡다.

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

덜컹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맹렬하던 전철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가속도만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

확연히 느려졌다고 느낀 순간,

일제히 조명이 들어온다. 다시 맹렬하게 덜컹거린다. 갑자기 누구도

파리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나는 건너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