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설 (鐸舌) / 김정랑
탁설 (鐸舌)
김정랑
솔바람이 머슴처럼 월정사 마당을 쓰는 초하루
일주문 넘은 수천의 발원들이 수광전에 모인다
까치가 댓바람에 물어온 화두는 행자가 깨먹기에 단단하다
요사채 주파수에 번뇌가 끼어들면
여여하라는 부처의 눈빛도 잡음이 된다
잘 때도 눈 못 감는 물고기라서
모르는 게 없는 소식통, 내
필생 울력은 청동죽비 되어
중생 홀리는 탐진치를 흩어버리는 것
옥분엄마 법당에 초 밝히고 귀 늘어뜨린 부처님께 큰절 올린다
오십 년 전 저수지에 잠긴 막내아들, 그날부터
업보 천근 매단 그녀의 어깨는 폐가처럼 기울었다
불목하니 부뚜막에서 조왕경을 지피고
공양간 하얀 입김은 옥분엄마 진한 한숨을 달인 듯
법당 안은 중생들의 초발심이 별식이다
고향이 제각각인 발자국이 무량수전 섬돌에 파도처럼 머물렀다 흘러가면
오대산 전나무 숲이 꽃살문에 잔물결로 일렁인다
엄마 잃어버린 뒤꿈치가 제일 수다스럽다던데
허방 헛디딘 옥분엄마 막내아들은 얼음장 밑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꽃살문에서 하산하는 옥분엄마 등은 오래된 무덤
백팔 배에 졸아붙은 그녀의 뒤꿈치가
독경하는 처마 끝 내 뒤꿈치와 부딪친다
설해목 받치던 귀 밝은 눈이 헛기침한다
※ '탁설'은 아들을 잃은 뒤 절에서 봉사하는 옥분 엄마의 수행을 바라보는 화자의 심리를 다룬 작품이다.
[단어정리]
● 탁설: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방울 속에 넣는 단단한 물건
● 발원: 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빎. 또는 그 소원.
● 수광전: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 무량수전, 극락전, 미타전, 아미타전이라고도 불리운다.
● 댓바람 : 갑작스럽게, 마음의 준비나 예측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
● 화두: 참선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참구(參究:참선하여 진리를 찾음)하는 문제
● 행자: 아직 승려가 되지 않고 사원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아직 수계를 받지 못한 예비 사미, 사미니
● 요사체: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전통 건축 사찰의 다양한 모습. 주로 스님들이 공부하거나 거처하는 곳이다
● 여여하라: 초목이 무성하다. / 위엄 있게 느릿느릿 움직이는 태도가 있다.
※ 본래 여여라는 말은 불가(佛家)의 용어로 ‘변함이 없는 마음’,‘속되지 않은 마음’이란 뜻입니다.
‘여여(如如)’라는 한자는 원래 산스크리트어 ‘타타타(tatahta)’의 의역으로, ‘물건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뜻이지요. 변화하는 세계의 변화하지 않는 존재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말합니다.
● 울력: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무보수로 남의 일을 도와주는 협동 방식
● 죽비: 대나무로 만든 법구
● 탐진치: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분노)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번뇌는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므로 삼독(三毒)이라 함. 108번뇌 더 나아가 8만 4천 번뇌는 탐진치 삼독에서부터 나온다고 함
● 불목하니: 절에서 밥을 짓고 물을 긷는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
● 조왕경 : 조왕(부엌신)의 공덕을 적어놓는 경전
● 공양간 : 절의 부엌
● 초발심: 처음으로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처음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 별식: 특별한 방식 / 여러 가지 방식 / 늘 먹는 것과는 다르게 만든 좋은 음식
● 꽃살문: 문살에 꽃무늬를 새겨 만든 문
● 허방: 땅바닥이 움푹 패어 빠지기 쉬운 구덩이.
● 독경: 불경을 소리 내어 읽거나 욈.
● 설해목: 많이 내린 눈으로 피해를 입은 나무. 특히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줄기나 가지가 부러진 나무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