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탁설 (鐸舌) / 김정랑

여만 2023. 11. 27. 16:29

탁설 (鐸舌)

      김정랑

 

 

 

솔바람이 머슴처럼 월정사 마당을 쓰는 초하루
일주문 넘은 수천의 발원들이 수광전에 모인다

까치가 댓바람에 물어온 화두는 행자가 깨먹기에 단단하다
요사채 주파수에 번뇌가 끼어들면
여여하라는 부처의 눈빛도 잡음이 된다

잘 때도 눈 못 감는 물고기라서
모르는 게 없는 소식통, 내
필생 울력은 청동죽비 되어
중생 홀리는 탐진치를 흩어버리는 것

옥분엄마 법당에 초 밝히고 귀 늘어뜨린 부처님께 큰절 올린다
오십 년 전 저수지에 잠긴 막내아들, 그날부터
업보 천근 매단 그녀의 어깨는 폐가처럼 기울었다

불목하니 부뚜막에서 조왕경을 지피고
공양간 하얀 입김은 옥분엄마 진한 한숨을 달인 듯
법당 안은 중생들의 초발심이 별식이다

고향이 제각각인 발자국이 무량수전 섬돌에 파도처럼 머물렀다 흘러가면
오대산 전나무 숲이 꽃살문에 잔물결로 일렁인다
엄마 잃어버린 뒤꿈치가 제일 수다스럽다던데
허방 헛디딘 옥분엄마 막내아들은 얼음장 밑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꽃살문에서 하산하는 옥분엄마 등은 오래된 무덤
백팔 배에 졸아붙은 그녀의 뒤꿈치가
독경하는 처마 끝 내 뒤꿈치와 부딪친다

설해목 받치던 귀 밝은 눈이 헛기침한다

 

 

 

※ '탁설'은 아들을 잃은 뒤 절에서 봉사하는 옥분 엄마의 수행을 바라보는 화자의 심리를 다룬 작품이다.

 

 

[단어정리]

● 탁설: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방울 속에 넣는 단단한 물건

● 발원: 신이나 부처에게 소원을 빎. 또는 그 소원.

● 수광전: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 무량수전, 극락전, 미타전, 아미타전이라고도 불리운다.

● 댓바람 : 갑작스럽게, 마음의 준비나 예측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

● 화두: 참선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참구(參究:참선하여 진리를 찾음)하는 문제

● 행자: 아직 승려가 되지 않고 사원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아직 수계를 받지 못한 예비 사미, 사미니

● 요사체: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전통 건축 사찰의 다양한 모습. 주로 스님들이 공부하거나 거처하는 곳이다

● 여여하라: 초목이 무성하다. / 위엄 있게 느릿느릿 움직이는 태도가 있다.

※ 본래 여여라는 말은 불가(佛家)의 용어로 ‘변함이 없는 마음’,‘속되지 않은 마음’이란 뜻입니다.

‘여여(如如)’라는 한자는 원래 산스크리트어 ‘타타타(tatahta)’의 의역으로, ‘물건의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뜻이지요. 변화하는 세계의 변화하지 않는 존재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말합니다.

● 울력: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무보수로 남의 일을 도와주는 협동 방식

● 죽비: 대나무로 만든 법구

● 탐진치: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분노)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 번뇌는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므로 삼독(三毒)이라 함. 108번뇌 더 나아가 8만 4천 번뇌는 탐진치 삼독에서부터 나온다고 함

● 불목하니: 절에서 밥을 짓고 물을 긷는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

● 조왕경 : 조왕(부엌신)의 공덕을 적어놓는 경전

● 공양간 : 절의 부엌

● 초발심: 처음으로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처음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 별식: 특별한 방식 / 여러 가지 방식 / 늘 먹는 것과는 다르게 만든 좋은 음식

● 꽃살문: 문살에 꽃무늬를 새겨 만든 문

● 허방: 땅바닥이 움푹 패어 빠지기 쉬운 구덩이.

● 독경: 불경을 소리 내어 읽거나 욈.

● 설해목: 많이 내린 눈으로 피해를 입은 나무. 특히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줄기나 가지가 부러진 나무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