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물방울 무덤들 - 엄원태
여만
2011. 5. 1. 11:03
물방울 무덤들
- 엄원태(1955~ )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 별무리처럼 맺혔다
맺혀 반짝이다가
미풍에도 하염없이 글썽인다
누군가 아그배 밑동을 툭, 차면
한꺼번에 쟁강쟁강 소리내며
부스러져내릴 것만 같다
저 글썽거리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 있다
나는 저기서 표면장력처럼 널 만났다
하지만 너는
저 가지 끝끝마다 매달려
하염없이 글썽거리고 있다
언제까지고 글썽일 수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
물방울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저 안에 이미 알알이
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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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마다 별무리처럼 맺혀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물방울 무덤’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고 하염없이 글썽인다. 반짝이고 글썽이는 별의 이미지와 덧없는 죽음(소멸)을 떠올리는 무덤이라는 말이 연합했는데 덧없음 쪽으로 기울지 않고 투명하고 맑은 마음을 펼쳐주었다. 이 마음이 그냥 왔을 것 같지는 않다. 고통과 상처의 나날을 발효시켜 상하지 않는 슬픔인 투명한 슬픔을 얻고 쟁강쟁강 소리 내는 맑은 마음을 얻었다. 그 마음속에 사는 글썽거림은 너와 나, 만물에 대한 연민이다. 매달린 물방울 하나하나는 비치는 유리우주여서 가까이 다가가면 단박 나를 제 속에 담아 준다. 자리는 서로 반대편이어서 모습을 거꾸로 비춰들었지만, 거기, 모든 너에게 가 달린 나는 내 속에 이미 너를 넣고 있었던 거다. 이런 만남의 시간만이 소멸 속에 처한 우리 존재를 영원으로 들어 올려준다. <이진명·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