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詩 /각시붓꽃
이상한 기다림
여만
2021. 3. 5. 16:36
이상한 기다림
쉿, 조심해야 한다
강변에 나가거든 입 닫고 발자국도 지우고 아주 조심 해야 한다
파드닥 푸른 물기를 털며 언제 일어날지 모를 거대한 짐승 한 마리
뱀처럼 납작 엎드려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돌, 돌들
고운 모래 위에
키 낮은 수풀 위에
행여 다칠라 가만가만 올려놓은 동글동글한
이때 나,
다순 햇살 속 몸 데우며 다음 생을 기다리는 수억 마리 어떤 알들을 상상한다
개구리알 연어 알 물새 알 아니 먼 바닷속 문어 알 아니 하늘 저편에 산란한 수수 천억 개의 별, 별들
생생하게 피가 도는 저 알들 속에는
오래 기다린
처음 만나는
무언가가 꼭 깨어날 것만 같은데
수많은 귀를 열고
심장을 콩닥거리며
- 시집 『각시붓꽃』 (2020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