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詩 /각시붓꽃

겨울 저 나무를 나라고 하면 안 될까?

여만 2021. 3. 5. 16:07

겨울 저 나무를 나라고 하면 안 될까?

 

 

 

 

 나무는 벌거벗은 채 기어코 침묵을 선택했다

 지난날 푸른 말들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시선을 멀 리에 두고 나무는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내저으며 아랫도리에 힘 꾹 주고 서 있다

 서둘러 말문 닫고 숨소리조차 지우고

 

 저 결기 어린 풍경 아무래도 좀 어둡긴 하지만 지금 그 앞에는 나무의 흉내를 내는데 골똘한 내가 있고 차디찬 바닥에는 누군가에게 가 닿지 못하고 떠도는 잎사귀들 이 힘없이 흩어진다

 

 흐린 허공에서는 한때 말이 되지 못한 채 버려진 폭설이 곧 쏟아질 것이다

 

 

- 시집 『각시붓꽃』 (2020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