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詩 /각시붓꽃
초콜릿 외설
여만
2021. 3. 5. 15:32
초콜릿 외설
벌건 대낮, 무장 해제된 채 소파에 누워 초코스넥을 먹는다 초코송이를 먹기 위해 쉿, 바지 지퍼를 열 듯 오리온 비닐봉지를 벗긴다 오랫동안 구름 속에 갇혔다 불 쑥 내미는 햇살처럼 반질반질한 예순아홉 개의 알맹이 들 맙소사 빳빳하고 기다랗고 동글한 오 나의 귀여운 초코송이, 비스듬히 누워 나른한 오후의 입술 속에 이렇게 한입 쏙 들이밀어도 좋을 앙증스러운 막대에는 초콜릿이 흠뻑 묻어 있다 메들리로 듣는 음악처럼 특별한 날 받는 꽃다발처럼 창밖에는 반짝이는 햇살에 안겨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자꾸만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는 나비 한 쌍의 날갯짓 보이고 낯설게 또는 부끄럽게 헐거워진 권태의 몸속에 너 하나 나 하나 차례로 그것을 밀어 넣는 달달한 휴일 오후
- 시집 『각시붓꽃』 (2020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