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詩 /각시붓꽃

어느 눈부신 오월에 문득

여만 2021. 3. 5. 11:11

어느 눈부신 오월에 문득

 

 

 

 

 죄를 쓰다듬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오, 오월의 햇살 속에서

 앞산 공원 눈부시게 펄럭이는 나무 잎사귀들을 바라 보다가 문득

 반짝반짝 반짝이는 유리 파편을 떠올렸다는 것

 가엾은 나는 지금까지 길도 없는 세상 어느 숲길을 홀

로 헤매는지

 

 휙, 공이 내던져지듯 그렇게 높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단번에 떨어져 버린 유리병처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내 온 생애를 송두리째 유리병에 담아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천둥처럼 산산조각,

 

 뚝뚝 초록 피를 흘리며

 선연한 파편으로 흩뿌려졌으면

 그리하여 저 눈부신 오월 풍경 속으로 단번에 잊혔 으면

 

 낙하의 깊이와 그 끝을 생각하며

 물끄러미 나는 산벚나무 잎들 위로 나부끼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는데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는

 저것은 분명 푸른 숲속에서 돌아오는

 아주 오래전의 나였다가

 떠나가는 나였다가

 다시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 시집 『각시붓꽃』 (2020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