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방/시집 속에서 꺼낸 詩

라고를 생각하다 -홍경나

여만 2018. 4. 30. 10:00

라고를 생각하다

 

     홍경나



   말을 고르고 있는데 머뭇거림이 먼저 네게 전송되었는지라고 보냈어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라고생각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네가 오는 방향으로 일어나 창밖으로 목을 내밀고 버뮤다와 아프리카 모스크바와 마드리드 오른쪽과 왼쪽 문득 다른 끝에서 불현듯 혼자 호주머니 속의 저녁 7시와 저녁 7시 이후 여전히 눈부시게 나를 에워싸는 라고를 생각했다 하얀 생크림 생일케이크가 되어 분명하게 뛰는 숨소리가 되어 조용히 착지하는 곁이 되어 라고를 생각했다

 

   〈집사람에게 보낸 문자가 잘못 갔습니다

 

   나는 라고를 생각했다 소복소복해지는 구석과 막 떠난 옆자리의 남은 온기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소실점 건성건성 지나는 저녁 해와 푸른 공기 더 푸르게 기우는 줄무늬의 골목 서쪽 베란다 걷지 않은 빨래와 피가 마르는 꽃바구니 쯧쯧쯧 냉장고에서 겉도는 쭈그렁사과가 되어 탁 탁 손을 털고 가는 먼발치가 되어 라고를 생각했다

 

   나는 라고를 위해 라고를 생각했다 사소하기도 하고 더 사소하기도 한 너를 위해 라고를 생각했다 너는 돌아오지 않는데 네게 보낼 말을 고르는 무심함으로 라고를 생각했다 애면글면 라고를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사코 갸웃하는 한사코 네 안으로 갸웃하는 라고를 생각했다 너는 돌아오지 않고 라고를 생각했다

 

     ⸻계간문예바다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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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나 / 1961년 대구 출생. 2007심상신인상으로 등단.